AI Operating Model
완벽한 AX 로드맵을 가진 조직이 실패하는 이유
AI 사용률을 KPI로 삼는 순간 시작되는 performative usage를 짚고, AX 문화를 만드는 것은 캠페인이 아니라 평가 체계라는 관점에서 learning velocity를 새로운 측정 대상으로 제안합니다.
2026.08.12 · 20분 읽기

완벽한 AX 로드맵을 가진 조직이 실패하는 이유
문화는 사람·조직 행이 아니라 평가 체계가 만든다
AI 전환(AX, AI Transformation)에도 이제 정석처럼 통하는 순서가 생겼다.
현황을 진단하고 유스케이스(use case)를 발굴한다. 파일럿을 돌린 뒤 우수 사례를 확산한다. 구성원의 AI 역량을 진단해 교육하고, 각 부서에는 AX 챔피언(AX Champion)을 세운다. 경영진은 비전을 선포하고 거버넌스(governance)를 만든다. 전략, 기술, 데이터, 사람·조직, 성과관리까지 하나의 매트릭스로 정렬하면 꽤 그럴듯한 AX 로드맵이 완성된다.
계획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지금이 가장 높은 수준일지도 모른다.
AI 도입 자체도 빠르게 보편화됐다. McKinsey의 2025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88%는 소속 조직이 적어도 하나의 업무 기능에서 AI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Microsoft의 2025 Work Trend Index에서는 리더의 82%가 지금을 전략과 운영의 핵심을 다시 생각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봤다. BCG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이른바 '10-20-70' 법칙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AI가 만드는 가치에서 알고리즘 자체가 차지하는 몫은 약 10%, 기술이 20%, 나머지 70%는 사람과 업무 방식의 변화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보편 법칙이라기보다 BCG의 컨설팅 경험에 기반한 휴리스틱(heuristic)이지만, 적어도 AI 전환을 기술 프로젝트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10-20-70 법칙 —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기업의 AI 디지털 전환(AI Transformation) 성패를 가르는 핵심 프레임워크로 '10-20-70 법칙'을 매우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10% 알고리즘(Algorithms)은 AI 모델과 알고리즘 선택에 투입되는 노력, 20% 기술 및 데이터(Technology & Data)는 이를 구현할 IT 인프라와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에 드는 노력, 70% 사람과 프로세스(People & Processes)는 직원 교육, 일하는 방식(워크플로우)의 재설계, 조직 변화 관리에 집중해야 하는 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로드맵이 정교해지는 만큼 실제 조직이 변하고 있지는 않다.
McKinsey는 AI를 통해 영업이익(EBIT)의 5% 이상을 만들고 동시에 '상당한 가치'를 창출했다고 답한 조직을 AI 고성과 조직(AI high performer)으로 정의했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응답자는 약 6%에 불과했다. AI를 쓰는 조직은 많아졌지만 AI로 조직의 경제성을 바꾼 조직은 여전히 소수다.
MIT NANDA의 2025년 보고서는 이 간극을 훨씬 자극적인 숫자로 표현했다. 이 조사에서는 통합형 생성형 AI(GenAI) 파일럿의 약 95%가 측정 가능한 손익(P&L) 임팩트를 만들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표본과 '실패'의 정의를 둘러싼 논란이 있어 이 수치를 기업 AI 프로젝트 전체의 실패율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다만 보고서가 실패의 원인을 모델 성능 자체보다 조직과 시스템의 '학습 격차(learning gap)'에서 찾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손익(P&L) 임팩트 — 손익(P&L, Profit and Loss) 임팩트는 특정 사업, 프로젝트, 비용 증감 또는 전략적 의사결정이 기업의 손익계산서(P&L) 상 매출, 비용, 그리고 최종 영업이익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과 결과를 뜻한다.
여기서 AX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이 AX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가. 더 정교한 로드맵인가, 아니면 로드맵이 보지 못하는 다른 무엇인가.
챔피언은 더 필요하다. 다만 역할의 방향이 달라야 한다
많은 AX 로드맵에는 챔피언 제도가 들어간다. AI를 먼저 잘 쓰는 사람을 찾고 교육한 뒤 각 팀에 배치해 성공 사례를 주변으로 퍼뜨리는 방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제도는 유지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오히려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조직 안에 이미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MIT NANDA 조사에서는 조사된 기업의 90% 이상에서 직원들이 회사가 공식 제공한 시스템 밖의 개인 AI 도구를 업무에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됐다. 이를 섀도 AI(Shadow AI)의 보안 문제로만 보면 절반만 보는 셈이다. 직원들은 이미 필요에 따라 AI를 업무에 끌어들이고 있다.
섀도 AI(Shadow AI) — 조직의 공식적인 승인이나 IT·보안 부서의 관리 감독 없이, 직원들이 업무를 위해 무단으로 인공지능 툴이나 모델을 사용하는 현상을 뜻한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그 에너지를 조직의 학습으로 흡수하는 장치다. 그리고 팀 단위에서 그 장치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AX 챔피언이다. 경영진은 개별 팀의 업무를 그 해상도로 보지 못하고, 전사 전담 조직(TF)은 팀 안에서 매일 벌어지는 시도를 관찰할 수 없다.
문제는 챔피언의 존재가 아니라 챔피언에게 맡기는 역할의 방향이다.
흔한 설계는 챔피언을 전파자(broadcaster)로 둔다. 잘 쓰는 사람을 뽑아 교육하고, 그 사람이 자기 성공 사례를 주변에 퍼뜨리게 한다. 방향이 안에서 밖으로 향한다.
이 설계는 확산에 관한 오래된 가정에 기대고 있다. Everett Rogers의 혁신확산이론(Diffusion of Innovations)이 보여주듯 혁신은 조직도의 계층을 따라 기계적으로 전파되지 않는다. 사회적 시스템과 커뮤니케이션 채널, 의견 리더와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타고 확산된다. '팀에서 성공하면 부서로, 부서에서 성공하면 전사로'라는 선형적 가정만으로는 현실의 조직 네트워크를 설명하기 어렵다.
혁신확산이론(Diffusion of Innovations) —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의 혁신확산이론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 제품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전파되고 수용되는지 설명하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이다.
방향을 반대로 놓으면 챔피언이 하는 일이 달라진다. 밖으로 퍼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도를 안으로 끌어모으는 사람, 즉 흡수 장치(absorber)가 된다.
누가 어떤 도구로 무엇을 우회하고 있는지 찾아낸다. 개인의 요령으로 남아 있는 방식을 팀이 함께 쓸 수 있는 형태로 구조화한다. 실패한 시도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만든다. 그렇게 검증된 패턴을 팀의 디폴트 업무 방식으로 올리고, 평가체계에 반영되도록 위로 올려보낸다.
선발 기준도 함께 달라진다. 지금 프롬프트를 가장 잘 쓰는 사람보다, 배운 것을 옆 사람에게 옮기는 데 능한 사람이 이 역할에 맞는다.
이렇게 보면 챔피언 제도의 핵심성과지표(KPI)도 달라진다. 교육 횟수나 자동화 건수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챔피언이 없어져도 그 팀의 행동이 유지되는가.
챔피언을 줄일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제도가 잘 쓰는 사람을 한 명 더 만드는 데서 끝나는지, 팀의 디폴트를 바꾸는 데까지 가는지는 구분해야 한다.
사용률만 높이면, 쓰는 척만 하게 된다
AX를 관리하려면 숫자가 필요하다. 교육 이수율, Copilot 활성 사용자 수, 프롬프트 횟수, 생성된 문서 수, 자동화 건수 같은 지표가 대시보드를 채운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숫자가 평가 기준이 되는 순간부터 생긴다.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은 측정값이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측정값의 품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캠벨의 법칙(Campbell's Law)도 중요한 사회적 지표일수록 의사결정과 보상에 강하게 연결될 때 왜곡 압력을 받기 쉽다고 설명한다.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 — '어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지표는 더 이상 좋은 지표가 아니게 된다'는 법칙이다.
캠벨의 법칙(Campbell's Law) — 어떤 양적 지표가 사회적 의사결정에 많이 쓰일수록, 그 지표가 가리키던 원래의 현상을 왜곡하고 부패시킬 압력이 커진다는 사회과학 격언이다.
AI 사용률도 다르지 않다.
'우리 팀은 AI를 얼마나 많이 쓰는가'가 KPI가 되면 조직은 아주 빠르게 답을 학습한다. AI가 필요하지 않은 일에도 AI를 켠다. 기존 업무는 그대로 둔 채 마지막 단계에 프롬프트 한 번을 추가한다. 업무 자체를 다시 설계하기보다 보여주기 쉬운 사용 건수를 늘린다.
지표는 올라가는데 생산성은 그대로인 상태가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것이 보여주기식 사용(performative usage), 즉 '사용하는 조직처럼 보이기 위한 사용'이다.
AX에서 물어야 할 것도 사용 여부가 아니라 업무가 실제로 어떻게 달라졌는가다.
'몇 명이 AI를 사용했는가?'보다 '이 업무에서 어떤 단계가 사라졌는가?'
'프롬프트를 몇 번 입력했는가?'보다 '리드타임(lead time)이 얼마나 줄었는가?'
'교육을 몇 명이 수료했는가?'보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했을 때 스스로 업무에 적용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측정 대상이 바뀌면 사람들이 최적화하는 행동도 바뀐다.
구성원은 회사가 무엇을 말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평가하는지를 보고 움직인다. AI를 잘 쓰자는 캠페인을 아무리 열어도, 실제 행동을 바꾸는 것은 평가표에 적혀 있는 항목이다.
AI를 잘 쓰는 문화가 사람의 기반 역량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AI 활용을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조언이 있다.
'백지에서 시작하지 마라.'
좋은 조언이다. 리서치 초안도, 문서 구조도, 코드 골격도 AI와 함께 시작하면 훨씬 빠르다. 다만 이것이 모든 업무의 디폴트가 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 판단하려면 최소한 무엇이 나쁜 결과인지 스스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AI의 답을 평가하고 수정하려면 AI 이전의 문제 해결 능력도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 한다.
Anders Ericsson이 연구한 의식적 연습(deliberate practice)의 핵심은 단순 반복이 아니다. 현재 능력보다 조금 어려운 문제를 직접 수행하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이다. 능력은 불편한 수행 과정을 없애서 생기지 않는다. 그 과정을 정교하게 반복하면서 생긴다.
의식적 연습(deliberate practice) —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이 정립한 개념으로, 단순한 반복을 넘어 명확한 목표, 철저한 피드백, 그리고 안정지대 탈피를 통해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획득하는 고도의 자기 주도적 훈련 방법론이다.
그래서 성숙한 AX 문화에는 역설적으로 'AI를 쓰지 않는 구간'도 필요하다.
항상 AI 없이 일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초 사고력과 도메인 판단력, 품질 판별력을 유지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사람이 직접 문제를 구성하고, 해결해야 하는 영역일 수 있다. 이를 의도적으로 휴먼인더루프(Human In The Loop, HITL)로 남겨 사람이 판단하게 해야 할 수 있다. 이는 프로세스에 따라 사람이 반드시 직접 구성해야 하는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AI가 초안을 만드는 능력과 사람이 좋은 초안을 알아보는 능력은 같은 능력이 아니다. 전자를 극대화하는 동안 후자를 소진하면, 조직은 어느 순간 빠르게 생성하지만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된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검수할 감각과 능력이 약해지게 된다.
로드맵이 준비되면 의존성도 점검해야 한다
Ron Adner는 『The Wide Lens』에서 혁신을 볼 때 기업 자신의 제품과 고객만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Philips의 HDTV다. Philips는 일찍부터 고화질 텔레비전에 막대한 투자를 했고 기술적 완성도와 소비자 반응도 확보했다. 하지만 HDTV가 실제 가치를 만들려면 방송 장비와 방송사, 콘텐츠 등 주변 생태계가 함께 준비돼야 했다. 제품 하나를 잘 만든다고 시장까지 저절로 만들어지는 구조가 아니었다.
Adner는 이런 위험을 공동혁신 리스크(co-innovation risk)와 채택 사슬 리스크(adoption chain risk)로 구분한다. 내 혁신이 다른 주체의 혁신 성공에 의존하는가. 최종 사용자가 가치를 경험하기 전에 다른 파트너들이 먼저 이 혁신을 채택해야 하는가. 혁신의 성패를 보려면 이 두 질문까지 렌즈 안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AX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모델은 준비됐다. 데이터도 붙였다. 현업 테스트도 통과했다. 그런데 보안 정책이 운영 배포를 허용하지 않는다. 구매 프로세스가 구독형 소프트웨어(SaaS) 계약을 늦춘다. 법무 검토 기준이 없다. 고객사가 AI 산출물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존 KPI 때문에 팀장은 새 프로세스로 바꿀 유인이 없다.
로드맵 안에서는 성공했지만 로드맵 밖의 의존성 때문에 멈춘다.
그래서 생태계 정합성(ecosystem alignment)을 전환(Transform) 단계에서 처음 확인해서는 늦다. 생태계 의존성은 마지막 확산 과제가 아니라 탐색(Explore) 단계에서부터 확인해야 할 조건에 가깝다.
사람을 변화의 객체로 놓지 않는 방법
대부분의 AX 로드맵은 사람을 '변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놓는다.
진단한다. 교육한다. 육성한다. 적용시킨다. 확산시킨다.
Adam Grant가 『Hidden Potential』에서 제시하는 관점은 조금 다르다. 현재 누가 가장 뛰어난지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얼마나 멀리 이동할 수 있는지,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성품 역량(character skills)과 학습 구조가 무엇인지 보자는 것이다. 잠재력을 개인이 이미 보유한 고정된 재고가 아니라 발전 가능성과 학습 과정으로 보는 관점이다.
성품 역량(character skills) — 정직, 책임감, 회복탄력성, 협력 등 태도와 인격에 관련된 능력을 뜻한다.
이를 조직에 적용하면 AX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현재 프롬프트를 가장 잘 쓰는 사람만 찾을 이유가 없다. 지난 석 달 동안 누가 가장 많이 발전했는지, 새로운 모델이 나왔을 때 누가 가장 빨리 원리를 파악했는지, 한 팀에서 발견한 업무 방식을 다른 팀이 얼마나 빨리 흡수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어제의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가 오늘 맞지 않을 때 얼마나 빨리 버릴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말하자면 지금 조직이 얼마나 많은 역량을 쌓아두고 있는지(stock)보다, 그 역량이 얼마나 빠르게 늘어나고 사람과 팀 사이를 옮겨 다니는지(flow)를 봐야 한다. 보유량은 시간이 지나면 낡지만 흐름은 다음 도구가 나와도 계속 작동한다.
현재 보유한 AI 역량(AI Skill)의 총량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의 학습 속도(learning velocity), 즉 새로운 도구와 업무 방식을 흡수하는 속도다.
조직의 AI 문화를 정착하려면 중간층을 함께 보아야 한다
문화는 '우리는 AI First 조직입니다'라는 문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오히려 그 조직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실험에 실패했을 때 숨기는가, 공유하는가. 상사의 문서를 그대로 만드는가, 더 나은 방법을 시험하는가. AI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는가, 실제 업무를 없애는 데 집중하는가.
Amy Edmondson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AX에서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습하려면 질문하고, 모른다고 말하고, 실험의 실패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실패한 AI 실험을 공개한 사람이 무능한 사람으로 평가된다면 아무리 많은 해커톤을 열어도 조직은 위험을 감수하는 실험을 피하게 된다.
그렇다고 심리적 안전감만으로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래에서 실험하려는 에너지가 있어도 위에서 권한을 주지 않으면 확산되지 않는다. 반대로 위에서 강하게 AI를 주문해도 중간관리자가 기존 생산성 KPI만 책임진다면 팀은 실험할 시간을 얻기 어렵다.
이를 공식처럼 표현하면 이렇다.
AX 문화 = 하향식 권한(Top-down) × 상향식 에너지(Bottom-up) − 중간층 마찰(Middle)
물론 수학식은 아니다. 조직 변화를 보는 하나의 렌즈다.
특히 중간층(Middle), 즉 팀장과 중간관리자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전환 요구를 실제 업무 우선순위로 번역하고, 구성원에게 어떤 행동이 허용되고 어떤 행동이 평가받는지를 결정한다.
McKinsey의 2025년 조사에서도 높은 AI 성과를 내는 조직은 다른 조직보다 개별 업무 흐름(workflow)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했다고 답할 가능성이 2.8배 높았다. 또 이들 조직의 응답자는 고위 리더가 AI 과제(AI initiative)에 강한 주인의식(ownership)과 실행 의지(commitment)를 보인다고 답할 가능성이 3배 높았고, 여기에는 리더 자신의 AI 사용 롤모델링도 포함됐다.
문화는 행사보다 업무의 디폴트와 경영의 디폴트가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마지막에 바꿔야 할 것은 평가 체계이다
조직에 AI 교육을 더할 수 있다. 챔피언을 더 선발할 수도 있다. AI Day를 열고 성공 사례를 발표하고 우수 팀을 시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평가표가 그대로라면 행동은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월말 실적을 맞추는 사람이 승진하고,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고, 새로운 방식을 시험하는 것보다 기존 프로세스를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편이 안전하다면 구성원은 그 기준에 맞춰 행동한다.
사람·조직 행을 한층 더 정교하게 만드는 것보다 평가 체계를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현재 AI 역량의 수준만 재기보다 학습 속도를 측정해야 한다.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새로운 방법을 얼마나 빨리 배우고 실제 업무에 적용했는지를 본다.
챔피언의 성과 역시 개인의 활동량보다 주변의 행동 변화로 판단하는 편이 낫다. 스타 플레이어 한 명을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없어도 작동하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
확산(Scale)의 기준도 사용률보다는 자생성에 둘 수 있다. '전 직원의 80%가 AI를 사용한다'보다 '외부 지원 없이도 새 도구를 업무에 적용하고 개선하는 팀이 몇 퍼센트인가'가 조직의 흡수 능력을 더 잘 보여준다.
품질 기준선(quality threshold)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모든 일에 100점을 요구하면 AI는 초안 작성 도구에 머문다. 반대로 모든 일을 AI의 70점짜리 결과로 끝내면 품질이 무너진다. 70점이면 충분한 업무와 95점 이상이어야 하는 업무를 조직이 함께 구분해야 한다.
생태계 의존성은 단계 전이의 관문 조건(gate condition)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만 볼 것이 아니라 보안·법무·구매·데이터·고객·파트너·평가체계가 함께 움직일 수 있는지를 초기부터 검증해야 한다.
관문 조건(gate condition) —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 관리, 또는 공정 제어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기준이나 검증 단계를 뜻한다. 품질 보증이나 오류 방지를 위해 특정 조건을 만족할 때만 '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이 아무리 빨리 학습해도 성과관리와 거버넌스가 움직이지 않으면 조직은 그 이상 빠르게 변하지 못한다.
문화는 가장 느린 행의 속도로만 간다.
학습 속도(Learning Velocity)를 재는 조직
앞으로 특정 AI 도구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는 점점 덜 희소한 경쟁우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의 좋은 모델은 경쟁사도 살 수 있다. 오늘의 프롬프트 기법은 몇 달 뒤면 제품 기능에 흡수될 수 있다. 지금 희소한 AI 역량도 교육 시장과 채용 시장을 거치며 빠르게 평준화된다.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것은 새로운 기술을 조직이 흡수하는 방식이다.
어떤 조직은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전담 조직(TF)을 만든다. 교육 계획을 세우고 활용 가이드를 만든다. 파일럿을 돌리고 성공 사례를 찾는다. 다음 모델이 나오면 같은 과정을 다시 시작한다.
다른 조직은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면 몇 주 안에 실험한다. 업무를 다시 설계하고 실패를 공유하며, 유효한 패턴은 평가체계에 반영한다.
두 조직 모두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다. 차이는 학습이 남느냐에 있다. 전자는 매번 도입 비용을 다시 치르고, 후자는 앞선 학습 위에 다음 학습을 쌓는다. 복리의 차이는 여기서 벌어진다.
Microsoft는 프런티어 기업(Frontier Firm)으로 가는 변화를 AI가 개인의 비서(assistant) 역할을 하는 단계, 에이전트(agent)가 인간과 함께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단계, 인간이 방향을 정하고 에이전트가 전체 업무 흐름(workflow)을 실행하는 단계로 설명한다. 조직의 형태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 전망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도구가 계속 달라지는 환경에서는 특정 도구에 최적화된 조직보다 달라지는 도구를 계속 흡수할 수 있는 조직이 유리하다.
그래서 AX의 마지막 질문은 '우리 회사가 AI를 얼마나 많이 도입했는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3년 뒤 우리 조직은 매년 새로워지는 도구를 매년 다시 '도입'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일이 이미 일상이 되어 있을 것인가.
전자는 계속 비용을 낸다.
후자는 계속 이자를 받는다.
지난 글 AI에 집중할수록 AX는 실패한다에서는 일하는 방식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AI를 도입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일을 알고 있는가에서는 AX의 최소 단위를 직무에서 업무 단위(Task)로 내렸다. 이 글은 그 위에 하나를 더한다. 일을 다시 설계해도, 그 설계를 유지시키는 것은 결국 평가표다.
About Seigniter
시그나이터(Seigniter)는 기업의 AI 도입을 넘어, AI로 실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AX(AI Transformation)를 고민하는 컨설팅펌입니다.
어떤 AI 기술을 쓸지부터 정하기보다 기업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살펴봅니다. 어디에서 비효율과 병목이 생기는지, 어떤 판단과 반복 작업이 있는지 파악하고 사람과 시스템, AI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설계합니다.
기업의 전략과 현장, 비즈니스 문제와 AI 기술 사이에는 아직 큰 간극이 있습니다.
시그나이터는 이 간극을 연결해 AI가 실제 업무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AI를 도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설계합니다.
Next st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