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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도입했는데, 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더 어려워졌는가

AI로 할 수 있는 일은 빠르게 늘었지만 그중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선명해지지 않았습니다. AX의 병목이 아이디어 발굴에서 우선순위·정렬·실행 약속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짚고, AI가 아니라 경영 이슈에서 출발하는 질문의 순서를 제안합니다.

2026.09.17 · 18분 읽기

AI를 도입했는데, 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더 어려워졌는가 — Seigniter Perspective 커버 이미지

AI를 도입했는데, 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더 어려워졌는가

AX의 병목은 아이디어에서 선택으로 이동하고 있다

몇 년 전 기업이 AI를 검토할 때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비교적 단순했다.

'AI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회의록을 정리할 수 있다. 보고서 초안을 만들 수 있다. 고객 문의에 답할 수 있고, 시장을 조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코드를 작성하고, 사내 지식을 검색할 수도 있다. AI 에이전트(AI Agent)는 이 가운데 여러 단계를 이어 붙여 사람 대신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AI 에이전트(AI Agent) — 사람이 한 번 지시하면 목표를 향해 여러 단계의 작업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AI 시스템을 말한다. 질문에 한 번 답하는 챗봇과 달리, 검색하고 판단하고 도구를 사용해 결과물까지 만들어 낸다.

AI로 할 수 있는 일이 부족해서 고민하던 시기는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스탠퍼드 HAI가 2026년 발표한 AI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조사 대상 조직의 88%가 적어도 하나의 업무 기능에서 AI를 사용하고 있었다. 생성형 AI(Generative AI) 역시 70%의 조직에서 하나 이상의 업무 기능에 쓰이고 있었다.

같은 보고서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다. AI 에이전트의 실제 배치 비율은 거의 모든 업무 기능에서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할 수 있는 일의 목록은 길어졌지만, 그 목록이 실제 업무 구조를 바꾼 곳은 아직 적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업의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그중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더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질문의 이동 – 몇 년 전에는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질문이었고 선택지가 적었지만, 지금은 회의록 정리부터 코드 작성까지 가능한 일의 목록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그중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선택의 질문이 더 어려워졌다

이 글은 그 질문의 이동에 관한 이야기다. AI로 가능한 일이 늘어날수록 AX의 병목은 아이디어를 찾는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고르는 단계로 옮겨간다. 그 단계를 설계하지 않으면 조직은 AI를 많이 쓰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된다.


AI 도입과 AX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AI의 확산은 분명 빠르다.

하지만 AI를 사용하는 것과 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AX(AI Transformation) — AI 도구를 도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AI를 전제로 일하는 방식과 조직 운영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을 뜻한다. 이 시리즈에서는 'AI 도입'과 구분해 사용한다.

맥킨지가 2025년 6월과 7월에 105개국 1,9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설문에서는 88%가 자신의 조직이 하나 이상의 업무 기능에서 AI를 정기적으로 사용한다고 답했다. 1년 전 같은 조사의 78%에서 다시 올라간 수치다.

그러나 전사적으로 AI 프로그램을 확장하기 시작했다고 답한 비율은 약 3분의 1에 머물렀다. 기업 전체 EBIT에 AI가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39%였고, 그중 대부분은 EBIT 기여도가 5% 미만이라고 답했다.

EBIT(Earnings Before Interest and Taxes, 이자·세금 차감 전 이익) —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이자와 세금을 빼기 전 단계에서 본 숫자다. 여기서는 AI가 회사의 본업 이익에 실제로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재는 기준으로 쓰였다.

두 조사가 서로 다른 출처처럼 보이지만, AI Index의 조직 도입률 항목은 이 맥킨지 설문을 근거로 삼는다. 서로 다른 두 기관이 같은 결론에 이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사를 두 곳에서 인용한 것이므로, 88%라는 숫자를 두 번 세지는 않아야 한다.

AI 사용에서 성과까지의 단계별 비율 – 조직의 88퍼센트가 하나 이상의 업무 기능에서 AI를 사용하지만, 전사 EBIT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39퍼센트, 전사적으로 확장을 시작한 비율은 약 3분의 1, EBIT 5퍼센트 이상의 기여와 상당한 가치를 함께 보고한 고성과 조직은 6퍼센트에 그친다

이 숫자를 '기업의 AI 투자가 실패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개별 활용 사례(Use Case)에서는 이미 비용 절감과 매출 효과가 관찰되고 있고, AI가 혁신이나 고객 만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응답도 존재한다. 응답자의 자기 보고에 기반한 설문이라는 한계도 있다. 자기 조직의 AI 성과를 실제보다 후하게, 또는 박하게 평가한 응답이 섞여 있을 수 있다.

활용 사례(Use Case) — AI를 특정 업무의 특정 문제에 적용하는 하나의 단위를 말한다. '고객 문의 자동 분류', '월간 보고서 초안 작성'처럼 범위가 정해진 적용 건 하나가 Use Case 하나다.

문제는 개별적인 활용을 기업 차원의 변화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즉 지금 많은 기업이 마주한 간극은 다음에 가깝다.

AI를 쓸 수 있는 곳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는 그만큼 선명해지지 않고 있다.


가능한 것이 많아지면,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한 기업에서 AI 활용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받아본다고 가정해 보자.

영업팀은 제안서 작성과 고객 분석을 이야기한다.

마케팅팀은 콘텐츠 제작과 광고 성과 분석을 이야기한다.

HR은 채용 서류 검토, 평가 보조, 사내 문의 응답을 이야기한다.

재무팀은 결산과 보고 자동화를 이야기하고, 개발팀은 코딩 에이전트(Coding Agent)와 QA 자동화를 제안한다.

각각의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 어느 하나도 틀린 제안이 아니다.

그러나 경영진이 결정해야 하는 질문은 전혀 다르다.

이 가운데 무엇이 지금 우리 회사에 가장 중요한가?

여기서부터 AI 문제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자원 배분(Resource Allocation)의 문제가 된다.

모든 아이디어를 동시에 추진할 수는 없다. 예산과 인력에는 한계가 있고, 데이터와 시스템을 연결할 수 있는 조직의 여력(Capacity)에도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변화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현업의 여력 역시 무한하지 않다.

조직 여력(Organizational Capacity) — 한 조직이 같은 시기에 감당할 수 있는 변화의 총량을 뜻한다. 예산과 인력뿐 아니라, 데이터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연결하고 새 방식에 적응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과 주의력까지 포함한다.

부서별 AI 아이디어가 쌓이는 모습과 경영진의 선택 – 영업, 마케팅, HR, 재무, 개발 각 부서가 타당한 아이디어를 내놓아 목록은 50개로 늘어나지만, 경영진이 답해야 할 질문은 그중 어느 3개에 사람과 예산을 배분할 것인가 하나로 좁혀진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가 1996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은 글 'What Is Strategy?'에서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략은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보유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은 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해야 활동과 자원이 한 방향으로 정렬될 수 있다. 포터는 트레이드오프가 없으면 경쟁사가 모든 것을 쉽게 따라올 수 있고, 조직 안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의 활동이 서로를 갉아먹는다고 지적했다.

트레이드오프(Trade-off) — 하나를 더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관계를 말한다. 전략에서는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는 결정이 곧 트레이드오프다.

AI 시대라고 해서 이 원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능한 선택지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선택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Use Case가 많다고 전략이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AI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단계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후보를 찾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30개의 아이디어를 50개로 늘리는 것은 발산(Divergence)이다. 그러나 50개의 아이디어 가운데 어떤 3개에 사람과 예산을 배분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략이다.

두 활동에는 서로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아이디어 발산에서는 가능성을 묻는다.

'AI로 이것도 할 수 있는가?'

전략적 선택에서는 가치와 트레이드오프를 묻는다.

'이 과제가 다른 과제보다 먼저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에 답하려면 적어도 사업 효과, 전략과의 연결, 시급성, 실행 조건, 필요한 데이터와 조직 변화가 함께 들어와야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한지만 확인하면 되는 첫 번째 질문과는 난이도가 다르다.

그래서 AI Use Case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반드시 AX가 진전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다면 각 부서가 자신에게 중요한 과제를 제안하고, 기술적으로 흥미로운 과제가 높은 관심을 받고, 서로 비교하기 어려운 후보들이 계속 목록에 쌓일 수 있다.

이 현상은 AI 이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로즈 홀리스터(Rose Hollister)와 마이클 왓킨스(Michael D. Watkins)는 2018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은 글 'Too Many Projects'에서, 조직이 기존 과제를 정리하지 않은 채 새로운 과제를 계속 추가하면 실행 단계에서 과부하가 생긴다고 짚었다. 새 과제를 시작하는 결정은 눈에 잘 띄고 보상도 받지만, 과제를 멈추는 결정은 보이지 않고 보상도 없기 때문에 목록은 한 방향으로만 자란다.

과제 과부하(Initiative Overload) —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 어느 과제도 충분한 자원과 주의를 받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과제를 시작하는 결정만 있고 멈추는 결정이 없을 때 생긴다.

AI는 여기에 훨씬 빠른 아이디어 생성 속도를 더했다.

따라서 AX의 병목을 단순히 아이디어 발굴(Idea Generation)의 문제로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병목은 점차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

우선순위(Prioritization) — 무엇부터 할 것인가.

정렬(Alignment) — 서로 다른 조직의 판단 기준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실행 약속(Commitment) — 누가 실제로 실행할 것인가.

AX 병목의 이동 – 과거에는 아이디어 발굴 단계가 좁은 병목이었지만 AI가 이 단계를 넓히면서, 이제 병목은 무엇부터 할 것인가를 정하는 우선순위, 조직 간 판단 기준을 맞추는 정렬, 누가 실행할 것인가를 정하는 실행 약속 단계로 옮겨간다

세 단계는 순서대로 오지만 따로 풀리지는 않는다. 우선순위를 정해도 부서마다 기준이 다르면 결정이 뒤집히고, 기준을 맞춰도 실행할 사람과 예산이 붙지 않으면 목록 위의 결정으로 남는다.


성과를 만드는 조직은 AI를 추가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차이가 나타난다.

맥킨지는 기업 전체 EBIT의 5% 이상을 AI에서 얻고 있으면서 AI에서 상당한 가치를 창출한다고 응답한 조직을 'AI 고성과 조직(AI High Performers)'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전체 응답자의 약 6%였다.

이 그룹은 다른 조직보다 개별 업무 흐름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했다고 답할 가능성이 거의 3배 높았다. 기존 프로세스에 AI를 붙여 속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AI가 있다는 전제에서 일의 순서와 역할을 다시 짰다는 뜻이다.

업무 흐름 재설계(Workflow Redesign) — 기존 프로세스의 각 단계에 AI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AI가 있다는 전제에서 단계의 순서, 담당, 검토 지점을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일을 말한다.

2026년 7월 BCG가 발표한 CEO 조사에서도 비슷한 간극이 보인다. 매출 5억 달러 이상 기업의 최고경영자 152명이 응답했다.

응답 CEO의 64%는 자신의 기업이 AI 파일럿(Pilot)을 추진한다고 답했지만, AI를 더 넓은 사업 변화(Business Transformation)의 일부로 포함한다고 답한 비율은 26%였다. 절반 이상이 AI 과제와 손익(P&L)의 연결이 불명확한 것을 핵심 장애로 꼽았지만, 모든 AI 과제에 대해 P&L 영향을 명확히 정의한다고 답한 비율은 14%였다. 사람과 역할의 재설계를 장애로 꼽은 비율은 55%였는데, 업무 프로세스와 역량의 재설계에 실제로 자금을 투입한다는 응답은 3분의 1에 미치지 못했다.

파일럿(Pilot) — 본격 도입 전에 범위를 좁혀 시험 운영하는 단계를 말한다. 범위가 좁기 때문에 데이터 공백이나 부서 간 의존성 같은 큰 문제를 피해 갈 수 있고, 그래서 성공하기도 쉽지만 전사로 확장하기는 어렵다.

P&L(Profit and Loss, 손익) — 일정 기간의 수익과 비용을 정리한 손익계산서, 또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이익을 말한다. 'P&L 영향을 정의한다'는 말은 이 과제가 매출이나 비용의 어느 줄을 얼마나 바꿀지 미리 적어 둔다는 뜻이다.

CEO가 아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의 간극 – AI 파일럿을 추진하는 기업은 64퍼센트지만 AI를 사업 변화의 일부로 포함한 기업은 26퍼센트이고, 절반 이상이 손익 연결을 장애로 꼽지만 모든 과제의 손익 영향을 정의한 기업은 14퍼센트이며, 55퍼센트가 사람과 역할 재설계를 장애로 꼽지만 재설계에 자금을 투입하는 기업은 3분의 1 미만이다

BCG는 이 차이를 기술 자체보다 실행의 문제로 본다. 조사에 참여한 CEO들은 AI의 재무 성과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모델이나 도구보다, AI 과제와 재무 성과의 불명확한 연결, 업무 흐름과 역할과 인센티브를 재설계하는 어려움 같은 조직 내부의 실행 문제를 더 자주 지적했다. 같은 조사에서 고성과 기업은 업무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설계했다고 답할 가능성이 약 7배 높았다.

이 조사들이 '업무 흐름을 바꾸면 반드시 AI 성과가 난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두 조사 모두 응답자의 자기 보고에 의존하고, 성과가 좋은 조직이 재설계를 했는지, 재설계를 한 조직이 성과를 냈는지는 설문만으로 가릴 수 없다. BCG 조사는 표본이 152명으로 크지 않고, 대기업 CEO에 한정된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패턴은 반복된다.

AI를 사용하는 기업과 AI를 기업의 변화로 연결하는 기업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어떤 AI를 골랐는가보다, 어떤 일을 바꾸기로 선택했는가에서 먼저 갈린다.

여러 산업의 크고 작은 국내 기업을 컨설팅하며 겪은 경험을 돌아보면, BCG가 짚은 실행의 무게에 깊이 공감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멈춘 프로젝트는 드물었다. 멈춘 것은 대개 누가 맡을지, 어느 부서가 먼저 움직일지, 기존 일 가운데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정하는 지점이었다.

여기에는 AI가 넘기 어려운 벽이 하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AI는 인터넷에 공개된 방대한 글을 읽고 그 위에서 확률적으로 답을 만든다. 그래서 공개된 적 없는 우리 조직 내부의 사정은 AI가 알 수 없다. '새로운 혁신 과제를 누가 주도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에 AI는 답할 수 없다. 그 사람의 이름도, 그 사람이 지난 프로젝트에서 무엇을 해냈는지도 인터넷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하나가 아니다. 조직 차원의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부서별 강점과 약점, 그동안 쌓인 경험, 장부에 적히지 않은 숨은 자산, 사람 사이의 신뢰까지 고려할 것이 많다. 이 부분을 AI에게 모두 맡길 수는 없다.

전략을 세우는 오래된 틀을 떠올리면 이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보인다.

전략의 두 가지 재료와 AI가 볼 수 있는 범위 – 전략은 사회·기술·법·경제 환경과 경쟁자, 공급자, 고객, 대체재를 보는 산업환경 분석과, 조직 구조와 제도, 기술 개발, 조달에서 사후 서비스까지의 가치사슬을 보는 내부 자원 및 능력 분석 위에서 어디서 경쟁할 것인가와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에 답한다. 산업환경 분석은 공개 정보라 AI가 읽을 수 있지만, 내부 분석의 재료는 조직 안에만 있어 AI가 알 수 없다

전략은 두 가지 분석 위에 선다. 하나는 산업환경 분석이다. 사회, 기술, 법, 경제 환경을 읽고, 경쟁자와 공급자, 고객, 대체재 사이에서 우리 기업이 어디에 서 있는지 본다. 다른 하나는 내부 자원과 능력 분석이다. 조직 구조와 제도, 기술 개발 역량, 그리고 조달에서 제조, 유통, 마케팅, 사후 서비스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Value Chain)의 어느 고리가 강하고 어느 고리가 약한지 본다. 두 분석이 만나는 곳에서 '어디서 경쟁할 것인가(where to compete)'와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how to compete)'라는 전략의 두 질문에 답이 나온다.

가치사슬(Value Chain) — 원재료 조달에서 제조, 유통, 마케팅, 사후 서비스까지 기업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 활동의 연쇄를 말한다. 마이클 포터가 정리한 틀로, 어느 활동이 경쟁 우위를 만들고 어느 활동이 비용만 쓰는지를 나눠 보는 데 쓴다.

AI는 이 가운데 첫 번째 분석에는 꽤 쓸 만하다. 산업 동향, 경쟁사 발표, 규제 변화, 기술 흐름은 대부분 공개 정보이고, AI는 이것을 사람보다 빨리 읽고 정리한다.

하지만 두 번째 분석의 재료는 회사 안에 있다. 어느 팀이 실제로 일을 끝내는지, 어떤 제도가 문서에는 있지만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지, 지난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회사 안에 있고,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꺼내 한 자리에 모으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일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절반은 AI가 도울 수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조직이 스스로 답해야 한다. 선택의 병목이 AI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능한 일의 목록은 AI가 늘려 주지만, 그중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가르는 근거는 조직 안에만 있다.


그래서 AX의 첫 질문은 AI가 아니어야 한다

AI 활용이 초기 단계였을 때는 '어디에 AI를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유용했다.

지금도 탐색(Exploration) 단계에서는 필요한 질문이다. 조직이 AI로 무엇이 가능한지 감을 잡으려면 한 번은 넓게 훑어봐야 한다.

하지만 기업 차원의 AX 전략을 결정할 때까지 같은 질문을 계속 사용하면 문제가 생긴다.

AI를 먼저 놓으면 모든 문제가 AI를 적용할 후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오래된 말과 같은 구조다.

질문의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 기업이 해결해야 할 경영 이슈가 무엇인지 본다.

그중 어떤 변화가 실제 사업 성과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찾는다.

그 변화 가운데 지금 자원을 투입할 과제를 선택한다.

그리고 나서야 묻는다.

'이 과제에서 AI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질문의 순서를 바꾸면 결과가 달라진다 – AI에서 출발하면 적용할 곳을 찾게 되고 모든 문제가 AI 후보처럼 보이지만, 경영 이슈에서 출발해 사업 성과에 영향이 큰 변화를 찾고 지금 자원을 투입할 과제를 고른 뒤에 AI의 역할을 물으면 전략이 AI의 자리를 정하게 된다

이 순서는 사소해 보이지만 결과는 상당히 다르다.

AI에서 출발하면 목록에 오르는 것은 'AI가 잘하는 일'이다. 경영 이슈에서 출발하면 목록에 오르는 것은 '회사가 풀어야 하는 일'이고, AI는 그 일을 푸는 여러 수단 중 하나로 자리를 잡는다. 어떤 과제에서는 AI가 중심이 되고, 어떤 과제에서는 보조에 그치고, 어떤 과제에서는 아예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AI가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전략이 AI의 역할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선택 기준이다

기업의 AI 활용 수준을 평가할 때 흔히 '몇 개의 AI Use Case가 있는가', '몇 명이 AI를 사용하는가', '몇 개의 에이전트를 만들었는가'를 센다.

이런 수치는 도입(Adoption)의 정도를 이해하는 데에는 유용하다.

도입률(Adoption Rate) — 조직 안에서 AI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이나 부서, 업무의 비율을 말한다. 얼마나 퍼졌는지는 보여주지만, 그 사용이 성과로 이어졌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우리 조직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여러 후보 가운데 왜 이 과제를 먼저 해야 하는가?

이 과제가 성공하면 어떤 사업 성과가 달라지는가?

무엇을 하지 않기로 결정할 것인가?

네 질문 가운데 마지막 질문이 가장 답하기 어렵다. 앞의 세 질문은 무엇을 더할지 묻지만, 마지막 질문은 무엇을 빼거나 미룰지 묻기 때문이다. 홀리스터와 왓킨스가 짚은 대로, 조직은 시작하는 결정에는 익숙하고 멈추는 결정에는 서투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상태에서 AI 아이디어만 계속 늘어난다면, 조직은 AI를 많이 사용하면서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선명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 AX에서 부족한 것은 반드시 아이디어가 아니다.

선택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조직이 같은 기준으로 합의하는 능력일 수 있다.

AI가 빠르게 발전할수록 가능한 일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의 경쟁력은 모든 가능성을 따라가는 데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먼저 결정하고, 나머지 가능성에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전략이 시작된다.


다음 질문

그렇다면 AX를 추진할 때 선정된 모든 전략 과제에 반드시 AI가 들어가야 할까.

다음 글 모든 전략과제가 AI 과제일 필요는 없다에서는 경영 문제와 AI의 역할을 어떤 순서로 연결해야 하는지 살펴본다.


Reference Notes

  • Stanford Institute for Human-Centered AI, The 2026 AI Index Report, Economy 챕터, 2026. 2025년 조직의 AI 도입률 88%, 생성형 AI 활용률 70%, 업무 기능별 에이전트 배치 비율을 참고했다. 조직 도입률 항목은 아래 맥킨지 설문을 근거로 한다.
  • McKinsey & Company, The State of AI in 2025: Agents, Innovation, and Transformation, 2025년 11월. 2025년 6월과 7월에 105개국 1,9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설문. AI 사용률, 전사 확장 비율, EBIT 영향, 고성과 조직의 정의와 업무 흐름 재설계 관련 결과를 참고했다.
  • Boston Consulting Group, CEOs Are Starting to See Value from AI. Now Comes Execution., 2026년 7월. 매출 5억 달러 이상 기업 CEO 152명 대상 조사. AI 파일럿과 사업 변화 포함 비율, P&L 연결, 재설계 자금 투입, 고성과 기업의 업무 흐름 재설계 관련 결과를 참고했다.
  • Michael E. Porter, What Is Strategy?, Harvard Business Review, 1996년 11–12월호. 전략에서 선택과 트레이드오프의 역할을 참고했다.
  • Rose Hollister, Michael D. Watkins, Too Many Projects, Harvard Business Review, 2018년 9–10월호. 조직의 과제 과부하와 과제를 멈추는 결정의 부재를 참고했다.

지난 글 AI‑First는 선택이 아니라 '전략'에서 기업이 AI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을, AI에 집중할수록 AX는 실패한다에서 일하는 방식을, AI를 도입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일을 알고 있는가에서 일의 구조를, 완벽한 AX 로드맵을 가진 조직이 실패하는 이유에서 평가 체계를, AI를 잘 쓸수록 내가 손해라면, 누가 AI를 쓰겠는가에서 일하는 사람의 유인을, AI 시대에 사람의 판단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에서 사람에게 남는 판단을 다뤘다. 이 글은 그 모든 설계가 시작되는 지점을 다룬다. 가능한 일이 넘치는 시대에, 무엇을 하기로 선택할 것인가.


About Seigniter

시그나이터(Seigniter)는 기업의 AI 도입을 넘어, AI로 실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AX(AI Transformation)를 고민하는 컨설팅펌입니다.

어떤 AI 기술을 쓸지부터 정하기보다 기업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살펴봅니다. 어디에서 비효율과 병목이 생기는지, 어떤 판단과 반복 작업이 있는지 파악하고 사람과 시스템, AI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설계합니다.

기업의 전략과 현장, 비즈니스 문제와 AI 기술 사이에는 아직 큰 간극이 있습니다.

시그나이터는 이 간극을 연결해 AI가 실제 업무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AI를 도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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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관점을 실제 조직 진단과 실행 설계로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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