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ufacturing AX
MES도 ERP도 있는데, 왜 제조 현장은 여전히 엑셀과 메일로 움직이는가
ERP·MES·QMS가 있어도 담당자는 여러 시스템을 오가며 정보를 모으고 판단합니다. 제조 AX 시리즈의 첫 글에서는 이렇게 사람이 이어 주는 업무를 살펴봅니다. 실제 업무 한 건을 따라가며, AI를 고르기 전에 무엇을 바꿔야 할지 찾는 방법과 다섯 가지 점검 신호를 제안합니다.
2026.10.08 · 16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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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도 ERP도 있는데, 왜 제조 현장은 여전히 엑셀과 메일로 움직이는가
제조 AX의 기회는 시스템 안보다 시스템 사이에 있다
제조기업을 방문하면 의외의 장면을 자주 만난다.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ERP)이 있다. 생산 현장을 관리하는 제조실행시스템(MES)도 있다. 품질 부서는 품질관리시스템(QMS)을 쓰고, 연구개발 부서에는 제품수명주기관리시스템(PLM)이 있다. 설비에서는 센서와 제어기(PLC)가 쉬지 않고 데이터를 만든다.
그런데 일이 실제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따라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담당자가 MES에서 생산 실적을 내려받는다. 엑셀에 붙여 넣고 ERP의 주문 정보와 맞춰 본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생산팀에 메신저로 묻는다. 품질 문제가 있으면 QMS를 열어 기준서를 찾는다.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으면 경험 많은 선임에게 전화한다. 판단이 끝나면 팀장에게 보고하고, 결과를 다시 시스템에 입력한다.
시스템은 이미 있다.
그런데 일은 여전히 사람을 통해 연결된다.
국내 조사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보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11월 국내 제조업체 504곳을 조사한 결과, 82.3%가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직원이 개인적으로 ChatGPT 같은 도구를 쓰는 경우는 빼고, 회사 차원에서 생산과 운영에 AI를 쓰는지를 물은 결과다. 대기업은 49.2%가 쓰고 있었지만 중소기업은 4.2%였다. 같은 조사에서 60.6%는 AI 전환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답했다.
조사가 그 이유까지 말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시그나이터가 컨설팅 현장에서 자주 보는 이유가 하나 있다. AI를 어디에 넣을지 정하기 전에, 일이 시스템과 사람 사이를 어떻게 오가는지 아직 아무도 그려 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엇을 바꿀지 모르는 상태에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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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은 있는데, 일은 사람을 통과한다
도식은 좌우로 밀어 볼 수 있다
1 / 5 · 시스템은 이미 있다
ERP에는 주문이, MES에는 생산 이력이, QMS에는 품질 기록이 있다. 기준서와 회신은 문서와 메일과 엑셀에 있다. 각 시스템은 제 일을 잘한다.
시스템이 있는데도 품질 이상 한 건이 생기면 담당자가 ERP, MES, QMS, 문서와 메일과 엑셀 사이를 오가며 정보를 묶고, 판단하고, 결과를 다시 입력하는 과정을 한 장면씩 보여 준다. 단계 버튼이나 키보드 좌우 화살표로 넘길 수 있다
- 시스템은 이미 있다: ERP에는 주문이, MES에는 생산 이력이, QMS에는 품질 기록이 있다. 기준서와 회신은 문서와 메일과 엑셀에 있다. 각 시스템은 제 일을 잘한다.
- 품질 이상이 생긴다: 품질 이상이 한 건 생긴다. 그런데 이 건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여러 시스템과 문서에 흩어져 있다.
- 시스템 사이를 사람이 잇는다: 담당자가 시스템마다 들어가 정보를 꺼내 하나의 상황으로 묶는다. 시스템과 시스템을 잇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다.
- 그리고 다음 행동을 정한다: 정상인지 예외인지 가려 누가 확인해야 하는지 정하고, 승인을 받는다. 이 판단은 어느 시스템에도, 어느 매뉴얼에도 적혀 있지 않다.
- 결과는 다시 사람이 입력한다: 판단이 끝나면 결과를 다시 QMS에, 보고 메일에 사람이 옮겨 적는다. 시스템 사이의 데이터 이동까지 사람이 맡는다.
- 사람 미들웨어: 시스템 사이에서 맥락을 묶고, 판단하고, 예외를 처리하고, 결과를 다시 옮기는 일을 사람이 맡는다. 제조 AX의 기회는 시스템 안보다 이 사이에 있다.
이 글은 제조 AX를 다루는 여섯 편의 첫 글이다. 앞의 글들이 무엇을 바꿀지 결정하는 기준과, AI가 실제로 일을 맡을 수 있는 조직의 조건을 다뤘다면, 이 시리즈는 그 질문을 제조 현장으로 가져온다. 품질 이상 한 건을 발견한 뒤 조치를 마치고 그 경험을 다음 업무에 반영할 때까지, 어디에서 일이 멈추고 어떤 절차를 바꿔야 하는지 살펴본다. 첫 글은 그 출발점,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에서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을 다룬다.
문제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이 끊기는 것이다
제조기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ERP, MES, QMS, PLM, 창고관리시스템(WMS)을 차례로 갖춰 왔다.
시스템을 어떻게 나누고 이을지에 대한 표준도 오래전부터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ISA-95는 공장의 일을 층(Level)으로 나눈다. 설비와 센서와 제어기가 아래층에, MES 같은 제조 운영 시스템이 그 위에, ERP 같은 경영 시스템이 맨 위에 놓인다. 표준의 중심은 제조 운영과 경영 사이, 곧 MES와 ERP 사이에 어떤 정보가 오가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것이다. 모델과 용어를 다루는 Part 1은 2025년에 다시 개정됐다.
그런데 시스템이 각자 잘 작동하는 것과,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표준은 어떤 활동이 어느 층에서 일어나고 층 사이에 어떤 정보가 오가는지를 정의한다. 하지만 그 정보를 받은 담당자가 다섯 개의 화면을 오가며 무엇을 맞춰 보고, 무엇을 판단하고, 누구를 기다리는지까지 정의하지는 않는다.
시스템을 하나의 구조로 묶는 일 자체가 별도의 과제가 되고 있다는 신호도 있다. Deloitte가 2024년 8~9월 미국에 본사나 사업장을 둔 대형 제조기업 임원 600명을 조사해 2025년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절반가량은 스마트 제조 도입 규모가 커지면서 필요한 운영·관리 기준을 전사 표준으로 정하고 있었다. 45%가 아키텍처 표준을, 54%가 통합 데이터 모델 형태의 데이터 표준을, 48%가 교육과 정착에 관한 표준을 쓴다고 답했다. 미국 대기업 임원의 자기 보고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조사는 사람이 시스템 사이에서 하는 일까지 재지는 않았다. 시그나이터는 이 숫자를 이렇게 읽는다. 시스템을 갖추는 것과 별개로, 이미 있는 시스템을 하나의 구조로 묶는 일이 따로 투자해야 하는 과제가 됐다. 거꾸로 말하면, 그 구조가 아직 없는 곳에서 시스템과 시스템을 잇는 일은 누군가가 대신하고 있다.
고객 주문은 ERP에 있다. 생산 이력은 MES에 있다. 품질 기록은 QMS에 있다. 설비 정보는 별도의 설비 데이터 저장소에 있을 수 있다. 작업 기준은 PDF와 사내 문서, 그리고 담당자의 경험 속에 있다.
이 정보를 하나의 상황으로 묶어 이해하는 일은 사람이 한다.
시그나이터는 이런 상태를 사람 미들웨어(Human Middleware)라고 부른다.
사람 미들웨어(Human Middleware) — 이 글에서 사용하는 표현이다. 미들웨어는 서로 다른 소프트웨어 사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게 해 주는 중간 계층을 말한다. 사람 미들웨어는 시스템 사이의 데이터 이동뿐 아니라 맥락 해석, 예외 판단, 승인, 책임, 다음 행동 선택까지 사람이 맡아 업무 흐름을 이어 가는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 사람은 단순한 복사·붙여넣기 창구가 아니다.
사람은 시스템 사이에서 정보를 찾고, 서로 다른 정보를 하나의 맥락으로 잇고, 정상과 예외를 가려내고, 누가 확인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다음 행동을 정한다.
한 사람이 동시에 세 가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흩어진 정보를 하나의 상황으로 묶는 사람, 그 상황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 규칙에서 벗어난 경우를 처리하는 사람.
그리고 이 역할은 대개 어느 시스템에도, 어느 업무 매뉴얼에도 적혀 있지 않다.
자동화가 여기서 멈췄던 이유
기존의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나 업무 흐름 자동화 도구는 경로가 분명한 일에서 큰 효과를 냈다. A 시스템의 값을 읽어 B 시스템에 넣고, 특정 조건이 되면 담당자에게 알리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보고서를 만드는 일은 규칙을 코드로 옮기기 쉽다. 문제는 제조 현장의 많은 일이 규칙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품질 이상이 생겼다고 해 보자.
MES에서 해당 생산 묶음(Lot)의 이력을 봐야 한다. 설비에서는 그 시점의 공정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QMS에서는 비슷한 불량이 예전에 있었는지 찾아야 한다. 표준작업절차서(SOP)에서는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다음 품질 담당자는 판단한다.
- 생산을 계속해도 되는가?
- 추가 검사가 필요한가?
- 어느 범위까지 격리해야 하는가?
- 협력업체 원자재 문제일 가능성이 있는가?
- 고객에게 알려야 하는가?
이 판단들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불량이라도 어느 고객의 제품인지, 출하가 얼마나 남았는지, 비슷한 일이 지난달에도 있었는지에 따라 답이 바뀐다. 전통적인 자동화로는 이런 맥락 의존적 판단(Context-dependent Decision)을 모두 규칙으로 적어 내기가 어려웠다.
생성형 AI와 에이전트가 제조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이유는 AI가 제어기를 대신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아니면 다루기 어려웠던 비정형 정보와 판단의 일부를, 이제 기계가 거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일부'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우리 조직은 AI를 쓰고 있는가, AI가 일할 수 있는 조직인가」에서 AI가 답변하는 도구에서 일하는 주체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이 지금 내리는 판단 가운데 AI가 분석과 비교를 도울 수 있는 부분과 사람이 직접 결정해야 하는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사람이 지금 무엇을 판단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A사의 품질팀에서 일어난 일
「좋은 AX 전략과제는 어떻게 결정되는가」에서 27개의 AX 아이디어를 3개로 좁혔던 부품 제조기업 A사로 돌아가 보자. A사는 전자부품을 만든다. 컨설팅 현장에서 여러 번 만난 장면을 하나로 각색한 가상의 회사이고, 특정 고객사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 글에서 A사가 올해 가장 중요한 경영 목표로 정한 두 가지 가운데 첫째가 납기 준수율 개선이었다. 견적서 업무 흐름 재설계를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자, 납기를 흔드는 또 하나의 원인이 품질팀 쪽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최종 검사에서 특정 유형의 불량이 늘었다.
검사 시스템은 이상을 빠르게 잡아냈다. 그런데 실제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품질 담당자는 MES에서 해당 Lot을 조회했다. 생산 시점과 설비를 확인하고, 설비 데이터에서 당시 공정 조건을 따로 조회했다. QMS에서 과거의 비슷한 불량을 검색했다. 작업 표준과 검사 기준을 다시 읽었다. 생산팀에 그날 특이사항이 있었는지 메신저로 물었다. 원자재가 의심돼 구매팀을 거쳐 협력업체에도 확인을 요청했다. 모은 자료를 엑셀에 붙여 원인 후보를 정리하고, 출하를 막아야 할지는 15년 차 선임에게 전화해 물었다. 추가 검사가 필요한지 판단해 조치안을 써서 메일로 올렸고, 팀장의 승인을 받은 뒤 결과를 다시 QMS에 입력했다.
이 흐름을 몇 건 따라가며 재어 보니 그림이 선명해졌다. 담당자가 실제로 손을 쓴 시간은 한 건에 서너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을 감지한 순간부터 조치가 승인되기까지는 평균 이틀 반이 걸렸다. 나머지 시간은 생산팀의 회신, 협력업체의 답변, 팀장의 결재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사이 해당 Lot의 출하는 보류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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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이상 한 건이 지나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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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5 · 검사 시스템이 이상을 잡는다
A사의 최종 검사에서 특정 유형의 불량이 늘었다. 검사 시스템은 이상을 빠르게 잡아냈다. 실제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A사의 품질 이상 한 건이 감지부터 근거 수집, 묻고 기다리기, 선임에게 묻기, 결재와 재입력까지 열한 단계를 지나는 길을 한 장면씩 쌓고, 마지막에 손을 쓴 시간 서너 시간과 감지부터 승인까지 이틀 반을 한 막대 위에 비교한다
- 검사 시스템이 이상을 잡는다: A사의 최종 검사에서 특정 유형의 불량이 늘었다. 검사 시스템은 이상을 빠르게 잡아냈다. 실제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 근거를 찾아 시스템을 돈다: MES에서 Lot을 조회하고, 설비 데이터에서 당시 공정 조건을 보고, QMS에서 과거 불량을 검색하고, 작업 표준과 검사 기준을 다시 읽는다.
- 묻고, 기다린다: 생산팀에 그날 특이사항을 메신저로 묻고, 구매팀을 거쳐 협력업체에 원자재를 확인한다. 답이 올 때까지 일은 멈춘다.
- 출하를 막을지는 선임에게 묻는다: 모은 자료를 엑셀에 붙여 원인 후보를 정리하고, 출하를 막을지는 15년 차 선임에게 전화해 묻는다. 그 기준은 문서 어디에도 없다.
- 결재를 기다리고, 다시 입력한다: 조치안을 메일로 올려 팀장의 결재를 기다리고, 승인이 나면 결과를 QMS에 다시 입력한다.
- 손을 쓴 시간과 기다린 시간: 담당자가 손을 쓴 시간은 한 건에 서너 시간이었지만, 이상을 감지한 순간부터 조치가 승인되기까지는 평균 이틀 반이 걸렸다. 나머지는 회신과 결재를 기다린 시간이다.
A사에는 MES도 있었고 QMS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업무 흐름은 담당자의 머릿속에 있었다.
이 상태에서 “품질팀에 AI를 도입하자”고 시작하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가 흐릿해진다.
챗봇을 만들 수도 있다. 품질 문서를 찾아 답해 주는 검색 증강 생성(RAG) 도구를 만들 수도 있다. 불량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A사의 품질 팀장이 처음 들고 온 안도 '품질 문서 검색 챗봇'이었다. 문서를 찾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는 담당자들의 호소가 근거였다.
그런데 한 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니 문서를 찾는 시간은 전체의 일부였다. 가장 오래 걸린 것은 회신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 정도면 출하를 막아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문서 어디에도 없고, 15년 차 선임 한 사람에게만 있었다. 선임이 휴가를 간 주에는 같은 유형의 이상에 대한 대응이 하루 더 늦어졌다. 「우리 조직은 AI를 쓰고 있는가, AI가 일할 수 있는 조직인가」에서 다룬 암묵지(Tacit Knowledge)가 바로 이런 것이다.
검색 챗봇은 문서를 빨리 찾게 해 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문서에 없는 기준을 찾아 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달랐다.
이 업무에서 사람은 정확히 무엇을 연결하고, 무엇을 판단하고 있는가?
A사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 갔는지는 이 시리즈의 다음 글들에서 차례로 따라간다.
기회가 있는 자리를 알려 주는 다섯 가지 신호
제조 현장에서 다음 현상이 반복된다면, 그 자리가 AX의 기회일 가능성이 높다.
1. 여러 시스템을 오간다. 일 하나를 처리하는 데 ERP, MES, QMS, 엑셀, 메일을 계속 오간다면 개별 시스템이 아니라 시스템 사이의 업무 흐름을 봐야 한다.
2. 같은 정보를 다시 입력한다. 이미 한 시스템에 있는 내용을 사람이 다른 문서나 시스템에 옮기고 있다면, 일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시스템에서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지점인 업무 인계(Handoff)의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앞선 글들에서 다룬 사람과 AI 사이의 인계보다 넓은 뜻이다.
3. “담당자에게 물어봐야 안다”가 반복된다. 정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맥락이나 판단 기준이 특정 사람에게 묶여 있을 수 있다.
4. 처리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실제 작업은 짧은데 승인, 확인, 자료 요청 때문에 며칠이 걸린다면 문제는 작업 속도가 아니라 업무 흐름이다. 이 경우 작업을 AI로 빠르게 만들어도 전체 시간은 거의 줄지 않는다.
5. 예외가 생기면 시스템 밖으로 나온다. 정상적인 경우는 시스템이 처리하지만, 조금만 복잡해지면 엑셀, 메일, 전화, 메신저로 옮겨 간다면 그 예외 경로가 가장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사람 미들웨어가 가장 바쁘게 일하는 곳이 대개 여기다.
내 업무로 점검하기
가장 최근에 처리한 업무 한 건에서, 어느 신호가 보이는가
한 건을 떠올리고 보이는 신호를 고르면, 어디부터 들여다볼지가 정리된다.
보이는 신호를 고르면 여기에 정리된다.
가장 최근에 처리한 업무 한 건을 떠올리고 다섯 신호 가운데 보이는 것을 고르면, 신호마다 A사의 예와 먼저 들여다볼 곳이 정리된다
시그나이터가 실제 업무를 복원하는 진단에서도 이 지점들을 핵심 대상으로 본다. 일이 넘어가는 업무 인계, 기다리는 대기, 규칙에서 벗어난 예외, 다시 하는 재작업, 같은 정보의 재입력, 시스템 사이의 복사, 그리고 특정 담당자의 암묵적 판단이다.
시스템을 하나 더 들이는 것이 답은 아니다
Michael Hammer는 1990년 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Reengineering Work: Don't Automate, Obliterate」에서, 기존 업무 방식을 그대로 둔 채 정보기술로 속도만 높이는 접근을 비판했다. 낡은 절차를 자동화하지 말고, 그 절차가 왜 있는지부터 물어 필요 없으면 없애라는 주장이었다.
AI에서도 같은 실수가 되풀이될 수 있다. 승인 절차는 그대로 두고 문서 작성만 AI에 맡기거나, 업무 흐름은 그대로 두고 코파일럿(Copilot)만 하나 더 붙이는 것도 개선이지만 AX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A사의 품질 이상 대응에 팀장의 첫 안대로 검색 챗봇을 붙였다면 어땠을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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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 챗봇을 붙였을 때 남는 것
도식은 좌우로 밀어 볼 수 있다
1 / 4 · 지금의 흐름
A사의 품질 이상 대응 한 건이다. 근거를 찾고, 묻고 기다리고, 선임에게 묻고, 결재를 기다리는 데 이틀 반이 걸린다.
A사의 품질 이상 대응 흐름에 검색 챗봇을 붙이면 문서를 찾는 일만 빨라지고, 생산팀과 협력업체와 팀장을 기다리는 칸과 선임 한 사람에게 묻는 칸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을 장면으로 보여 준다
- 지금의 흐름: A사의 품질 이상 대응 한 건이다. 근거를 찾고, 묻고 기다리고, 선임에게 묻고, 결재를 기다리는 데 이틀 반이 걸린다.
- 검색 챗봇을 붙인다: 품질 팀장이 처음 들고 온 안은 '품질 문서 검색 챗봇'이었다. 문서를 찾는 시간은 분명히 줄어든다.
- 기다림과 선임 의존은 그대로 남는다: 이틀 반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던 기다림은 그대로이고, 출하를 막을지의 기준은 여전히 선임 한 사람에게 묶여 있다. 과업 하나는 빨라졌지만 일은 바뀌지 않는다.
- 다시 볼 구간: 점선으로 묶은 구간이 다시 볼 대상이다. 칸 하나를 빠르게 하는 대신, 이 구간의 기다림과 판단이 왜 생기는지부터 묻는다.
- 과업을 빠르게 하는 것과 흐름을 다시 보는 것: 검색 챗봇이 바꾼 것은 칸 하나다. 이틀 반의 대부분을 만든 점선 구간은 그대로 남는다.
「모든 전략과제가 AI 과제일 필요는 없다」에서 같은 문제라도 원인에 따라 필요한 개입이 다르다고 했다. A사의 견적 사례에서 병목은 초안 작성이 아니라 할인율 승인 권한이었다. 품질 이상 대응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다림은 승인 권한을 조정하면 사라지고, 어떤 재입력은 시스템을 연결하면 사라진다. 승인 권한을 조정하고 시스템을 연결한 뒤에도, 여러 근거를 비교하고 상황에 맞게 판단하는 일이 남는다. 이런 일을 AI가 도울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이 업무 흐름을 처음부터 사람과 AI와 시스템이 함께 일한다는 전제로 설계했다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일했을까?
답이 '아니다'라면 과업이 아니라 업무 흐름 자체를 다시 봐야 한다.
그래서 제조 AX의 첫 단계는 AI가 아니다
AI를 먼저 고르면 AI가 풀 수 있는 문제를, 에이전트를 먼저 고르면 에이전트를 넣을 과업을, RAG를 먼저 고르면 검색 문제를 찾게 된다. 반대로 일을 먼저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 어디에서 시간이 사라지는가?
- 어디에서 정보가 끊기는가?
- 어디에서 재작업이 생기는가?
- 누가 어떤 근거를 보고 판단하는가?
- 어떤 판단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내리고, 어떤 판단은 담당자의 경험에 의존하는가?
- 어떤 예외에서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가?
여기까지 내려가야 AI를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에는 넣지 말아야 하는지가 보인다.
「AI를 도입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일을 알고 있는가」에서는 직무 전체가 아니라 그 안의 개별 과업을 기준으로 실제 업무 구조를 그려야 한다고 했다. 제조 현장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과업과 과업 사이, 시스템과 시스템 사이에서 사람이 무엇을 잇고 무엇을 판단하는지까지 지도에 올려야 한다. 사람 미들웨어가 하는 일은 대개 직무기술서에도, 시스템 화면에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제조 AX의 출발점은 기술 선택이 아니라 일의 발견(Work Discovery)이다.
일의 발견(Work Discovery) — AI를 적용할 후보를 찾기 전에, 실제 업무가 어떤 순서로 누구를 거쳐 어떤 시스템과 판단을 지나 완료되는지를 복원하는 일을 말한다. 공식 절차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흐름을 대상으로 한다.
내일 해 볼 수 있는 한 가지
여러 시스템을 이미 갖췄는데도 현업이 엑셀, 메일, 메신저와 사람의 기억에 기대고 있다면, 새 AI 도구를 고르기 전에 해 볼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가장 최근에 처리한 업무 한 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것이다.
“이 업무는 원래 어떻게 진행됩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그 질문에는 공식 절차가 돌아온다. 대신 “지난주에 처리한 그 건을 처음부터 같이 따라가 보겠습니다”라고 묻는다.
그리고 단계마다 다섯 가지를 적는다.
- 누가 했는가?
- 어느 시스템이나 문서를 열었는가?
- 무엇을 보고 무엇을 판단했는가?
- 누구를, 얼마나 기다렸는가?
- 결과를 어디에 다시 적었는가?
내 업무로 적어 보기
업무 한 건을 따라가는 기록표
'원래 어떻게 진행됩니까'가 아니라 '지난주에 처리한 그 건'을 처음부터 적는다. 예시를 불러와 고쳐 써도 된다.
기다림과 다시 적기가 몰린 단계가 사람 미들웨어가 가장 바쁜 자리이고, 먼저 다시 볼 후보다.
적은 내용은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되고 시그나이터로 전송되지 않는다.
다섯 질문을 열로 둔 기록표에 내 업무 한 건을 단계별로 적는다. A사 예시를 불러와 고쳐 쓸 수 있고, 기다림과 다시 적기가 몇 곳인지 바로 세어 주며, 표를 복사해 문서로 옮길 수 있다
한 건만 따라가도 공식 절차와 실제 흐름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세 건을 따라가면 매번 반복되는 기다림과, 매번 같은 사람에게 묻는 판단이 보인다. 그 자리가 사람 미들웨어가 일하고 있는 곳이고, 제조 AX가 시작돼야 하는 곳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살펴본 업무 한 건을 분석하기 쉽도록 세부 단계로 나누는 법을 다룬다. 제조 현장의 업무를 분석할 때는 물건과 정보가 이동하는 흐름뿐 아니라, 판단이 이루어지는 순서도 함께 그려야 한다. 이것을 판단의 흐름(Decision Flow)이라고 부른다.
Reference Notes
- 대한상공회의소, 국내 제조기업 AI 전환 실태 조사, 2025년 11월 발표(한겨레 2025년 11월 18일 보도 참고). 국내 제조업체 504곳 대상.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는다는 응답 82.3%(직원 개인의 생성형 AI 사용은 제외), 대기업 활용 49.2%와 중소기업 4.2%, AI 전환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응답 60.6%를 참고했다. 효과를 의심하는 이유에 대한 해석은 조사 결과가 아니라 시그나이터의 관점이다.
- ISA, ISA-95 Standard: Enterprise-Control System Integration. ANSI/ISA-95.00.01-2025(Part 1: Models and Terminology) 개정,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이후의 경과, 층 구조와 Level 3–4 사이 정보 교환이라는 표준의 중심 범위를 ISA 공식 소개 페이지에서 참고했다.
- Deloitte, 2025 Smart Manufacturing and Operations Survey: Navigating challenges to implementation, 2025년 5월 1일. 2024년 8~9월 미국에 본사나 사업장을 둔 연매출 5억 달러 이상, 직원 1,000명 이상 제조기업 임원 600명 조사(보고서 방법론 기준). 규모가 커진 도입과 거버넌스 관리를 위한 아키텍처 표준 45%, 통합 데이터 모델 형태의 데이터 표준 54%, 교육·정착 표준 48%를 참고했다. 자기 보고 설문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 Michael Hammer, Reengineering Work: Don't Automate, Obliterate, Harvard Business Review, 1990년 7–8월호.
- 업무 인계, 대기, 예외, 재작업, 재입력, 시스템 간 복사, 암묵적 판단을 진단 대상으로 보는 관점은 시그나이터 Knowledge의 「AI-IS Process — PI 인터뷰 진단 로직을 구조화하는 Canonical Playbook」과 「Process Decomposition」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 본문의 A사는 컨설팅 현장에서 반복해 만난 장면을 하나로 각색한 가상의 기업이며 특정 고객사를 가리키지 않는다. 처리 시간과 대기 시간, 선임의 연차 같은 수치와 맥락에 따른 대응 예시도 장면을 설명하기 위한 각색이다.
이 글은 제조 AX 시리즈의 첫 글이다. 앞선 세 글에서는 무엇을 바꿀지 결정하는 기준을 다뤘고, 조직에 관한 글에서는 AI가 실제 업무를 맡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살펴봤다. 제조 AX 시리즈는 이 질문을 제조 현장에 적용한다. 첫 글에서는 여러 시스템 사이에서 사람이 정보를 모으고 판단하며 업무를 이어 주는 상황을 살펴봤다.
관련 글: 「AI를 도입했는데, 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더 어려워졌는가」, 「모든 전략과제가 AI 과제일 필요는 없다」, 「좋은 AX 전략과제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우리 조직은 AI를 쓰고 있는가, AI가 일할 수 있는 조직인가」.
About Seigniter
시그나이터(Seigniter)는 기업의 AI 도입을 넘어, AI로 실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AX(AI Transformation)를 고민하는 컨설팅펌입니다.
어떤 AI 기술을 쓸지부터 정하기보다 기업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살펴봅니다. 어디에서 비효율과 병목이 생기는지, 어떤 판단과 반복 작업이 있는지 파악하고 사람과 시스템, AI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설계합니다.
기업의 전략과 현장, 비즈니스 문제와 AI 기술 사이에는 아직 큰 간극이 있습니다.
시그나이터는 이 간극을 연결해 AI가 실제 업무 안에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합니다.
AI를 도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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